바다와 밤

 *웬만해서는 이런 말 안하지만 안 읽었으면 좋겠다. (나쁜 쪽으로) 약 빤 것 같다. 이딴 걸 본 사람이 너무 불쌍하고 그 사람을 괴롭게 한 나 자신이 너무 수치스럽다.



나는 변소에 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여름이었다. 숨이 턱턱 막힌다. 화장실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더웠다. 그러나 별 수 없이 이 안에서 15분을 지새고 있었다.


땀이 떨어져 허벅지에 물방울을 만들었다. 온 몸이 떼 투성이이고 찝찝하다. 사방에서 쉰 냄새가 진동한다. 한낮, 등불은 꺼져있고 밖에서는 매미 우는 시끄러운 소리 외 침묵 뿐이다.


나는 몇 년전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이 갑갑하고 불쾌한 와중 내 머릿속에 또다른 찝찝한 일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나는 남아시아의 어느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뜨거움에 숨까지 턱턱 막혀왔다. 나는 길을 잘못 들어 외진 거리를 헤메이고 있었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찌는 듯한 열대야였다. 쓰러질 것만 같았고, 난 그 자리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둠 속 으슥한 골목 속 빛바랜 야자수들과 비포장 도로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내 눈앞에 트럭 한대가 불쑥 나타났다. 거대한 금속재 짐칸은 각양각색으로 페인트칠 되어 있었다. 15분에 얼마네 뭐네 하는 홍보용 문구들은 죄다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고, 어디선가에서 들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트럭의 바로 뒤편으로 똑같이 생긴 트럭이 한 대 더 나타났다. 비슷하게 꾸며진 짐칸에 쓰여진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저 안에 정신병에 걸린 나이 든 여자들을 넣어두고 이리저리 오가며 매춘업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율했다.


‘세상 어딘가에는 어둠이 있을 거야. 어둠이 없다면 어둠의 그림자라도 있을 거야.’


아주 짧은 시간동안 아주 흐릿하게 내 무의식 속에서는 이런 것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트럭들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정신이 아찔하더니 눈 앞이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마침 신호에 걸려 마치 일부러 보란 듯이 내 앞에 멈추어 선 것만 같았다. 어쩌면 마땅히 음식도 먹지 못하고 온 종일 걸었던 탓에 심신이 피로했던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건너편의 암흑 속에서 발광하는 안광을 보았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구석기 시대 비문명의 인간이 질렀을 법한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뛰었다. 아주 커다란 검은색 마른 개가 나를 보며 번뜩거리는 눈으로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었다.


쾅.쾅.


그것은 몇 번 철망을 강하게 치며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나는 그것이 철망을 넘었는지 넘지 못했는지도 보지 않고, 대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려 하지도 않고 미친듯이 뛰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에 한 번 나뒹굴 것만 같았다.


그날 밤은 악몽처럼 거리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물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죽을까, 죽지 않을까? 그러나 새벽 여명이 밝아왔을 때, 나는 내가 죽기는 커녕 앞으로 몇 십년의 삶을 앞두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때는 공포에 취해 죽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겨우 숙소에 되돌아오고 나서,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의 지도를 파헤치려 애썼다. 정신병. 정신병. 정신병에 걸린 개. 정신병에 걸린 창녀. 정신병에 걸린 노인. 나의 할아버지. 이빨이 다 빠진채로 흐물흐물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그렇게나 괴롭혔던, 치매에 걸린 채 죽어갔던 나의 할아버지…….


아침이 되자 새들이 지저귀었다. 당이 다 떨어져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기는 커녕 숫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새 뜨거운 태양을 마주보며, 아주 불쾌한 느낌에 곤혹스러워하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방황한단 말인가. 단지 못 먹고 많이 걸은 탓이었을까? 나는 이 찝찝한 감정을 규명하기 전까지는 방을 뜨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온 몸은 아직도 땀 투성이었다. 귓전에 내 심장소리가 들렸고 뜨거운 목이 박동에 따라 부풀어올랐다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느꼈던 것은 고통이었다.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도 오래 혼자 서성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그 고통이 바로 내가 어제 보았던 그 어두운 길목 때문임을, 내가 숙소에 게으르게 누워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아직도 그 자정의 시간에 남아, 그 기이한 길목에서 몸을 팔고 울부짖고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난 온 몸을 부들부들떨며 스스로를 저주했다. 열기에 팽창한듯 뜨거워진 얼굴에 찬물을 묻히며, 나는 거울 속 유난히 창백해보이는 내 얼굴과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정녕 나는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먹어치우며 살고 있었단 말인가. 누군가가 내 영혼을 되찾아준 것이다, 나는 감격과 놀라움에 젖어 중얼거렸다.


그 때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에 교회에서 전도사의 기도를 들으며 황홀경에 젖어 흐느끼던 것이 떠올랐다. 신이시여, 이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소서. 이백년 간 물려있던 짐을 벗어던진 것처럼 후련했다. 나는 벌떡 일어서 아침의 거리를 걸으며, 모든 사람들의 눈을 마주쳤다. 여태껏 내가 함부로 추하다 어떻다 말하던 그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그것에 입을 맞추고 절을 하고 싶었다.


'그게 언제의 일이었더라,' 나는 이 뜨거운 화장실 안에서 생각했다.


겨우 볼일을 다 마치고 나서, 나는 에어컨이 아주 간절해진 채로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러나 빌어먹을, 거실도 사정은 똑같았다. 찌는 듯한 여름.


나는 이곳이 싫다. 이곳은 산골이었다. 산골이 싫다. 이곳은 나의 외할머니의 집이었다. 너무 늙어서 나이를 알고 싶지도 않은 외할머니의 집.


나 외에도 사촌들이 몇 와 있었다. 전부 내 또래였는데, 낙희라는 조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여자 한 명을 제외하면 남자였고 어렸을 때는 여기저기서 함께 뛰놀기도 했던 것 같았지만, 현재 모두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데다가 다시 만날 일도 없었던 터라 지금은 남남이나 다름 없었다.


“오늘 밤은 내내 밀물이구나,” 방 저편 창밖을 바라보며 외할머니가 중얼거렸다. 달빛을 받으며 과일을 깎으며, 불이라고는 붉은빛의 작은 전등만을 키고 암흑 속에 앉아있는 모습이 흡사 미친 사람 같다.


나는 애써 역겨움을 참으려고 했다.


“저 집은 진짜 어떡한데요.”


낙희가 할머니 옆에서 말했다. 창문 밖으로 언뜻 보이는 맞은 편 낮은 집 한채가, 집의 입구마저 가득 차오른 물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새벽 두시였다. 저 년들은 지금이 대낮이라는 듯 저렇게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뭔가가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군. 나도 예외는 아니야,’ 나는 약간 떨떠름하게 속으로 되뇌었다.


바로 뒷 방에서는 각각 문진과 태윤이라는 이름의 사촌 둘과 왠지는 모르겠으나 자꾸 기웃거리는 장애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예전에 산재로 다리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기분 탓인지 불쾌할 정도로 낯 익었는데,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때 낙희가 내 인기척을 알아채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도 붉은 전등과 서정적인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는데, 그녀의 얼굴은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흔한 얼굴이었다.


“한서 씨는 왜 거기에 그렇게 서 있어요? 정말 귀신같아.”


그녀가 웃었다. 나도 예의상 살짝 웃었지만 즐거워서는 아니었다.


그때 뒷문도 드르륵 열렸다. 나는 뒷 방의 불이 모조리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또 깜짝 놀랐다. 지금은 새벽 두 시가 아닌가?


문진은 두꺼운 교재 하나와 수식이 빼곡히 적힌 공책 하나를 붙들고 있었고 태윤은 그 옆에 앉아서 무선 노트 하나를 들고 있었다- 문진의 공책과는 천차만별로, 혼자 땅따먹기 게임을 한 것 같은 동그라미 엑스들로 가득했다. 장애인은 방의 한 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장의 열린 문에 낑기듯 앉아 있었는데, 무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짐짓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서도 아까와 같은 불쾌한 역겨움 같은 것을 느꼈다.


보아하니 문을 연 사람은 문진 같았다. 그는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낙희에게 말했다.


“저 사람한테 말걸지 마요. 당장 대낮의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면 미쳐버리고 말거야.”


나는 나를 버젓이 사이에 두고 그 말을 하는 무례함에 놀랐다.


“아뇨, 그러니까 더 말을 걸어줘야 해요. 저 사람은 단지 몹시 덥고 갑갑한 거라고요, 그래서 겁에 질렸어요. 우리 때문에요. 그렇죠? 자, 어서 이리 와 앉아요. 혼자 서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이 밤을 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턱짓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했다. 달밤은 물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배 한 척도 지나가지 않는 깊은 바다가 산기슭 골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닷물이 집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스멀스멀 기어올라올 것 같았다. 색은 짙었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깊었다. 그 모든 것 위 차분하게 떠오른 거대한 보름달은 고요하고 영롱하게 은빛 비닐같은 빛을 바닷물 위에 반사하고 있었다. 좌우로, 너무 깊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았을 짙은 산이 새까맣게 팽창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느 밤 악몽 속 풍경인 듯 기이했다.


“아름답지 않아요? 아, 또 긴장하셨어!”


그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란 쉬운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몇 년 전 남아시아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전율했다.


낙희가 문진에게 말을 걸었다.


“불편한 건 없어요?”


문진이 웃었다.


“더워요. 그뿐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온통 땀 투성이가 됐어요, 헤헤,” 태윤이 백치처럼 웅얼거렸다. 사실 문진과 태윤의 공통점이라고는 여드름이 많다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보았을 때, 문진처럼 척 봤을 때 깐깐하고 결벽증이 있고 콧대 높아 보이는 사람이 태윤처럼 단순무식한 놈이랑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뭔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이 되자 높게 차올랐던 물이 순식간에 빠져버렸다.


“달이 데려간 거야,” 낙희가 말했다.


나는 순식간에 창밖의 형체들이 떠오르는 햇빛으로 밝아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작스레 두통이 밀려왔고, 나는 잠시 산책을 하고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러시게나. 단 이끼를 조심하게,”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가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을 주시했다.


나는 거리를 나가며 이런저런 생각에 잡혔다. 제기랄. 내가 왜 이곳에 도착했던 것일까? 이곳에는 나를 무섭게 하는 것들로 가득한데.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내려고 애썼는데, 마치 이미 지나가버린 꿈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고 가물가물했다. 나는 10분 동안 그 생각을 반복했다.


그러나 한 순간, 거의 집에 다시 도달했을 무렵, 나는 누군가를 기억해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집에 오면 줄곧 이웃집에 들르고는 했다. 이웃집에는 홀아비 하나와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아이들에 불과했던 문진과 태윤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둘이 떠날 때까지도 집에 남아있고는 했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 집 딸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그 여자와 그의 오빠와 커다란 바다 앞에 서서 우리만의 놀이를 개발했다. 먼저 그 얘기를 꺼낸 것은 딸 쪽이었다.


“있잖아, 바다는 엄청 크잖아,”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그녀가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우리가 여기에다가 돌을 하나씩 쌓으면, 계속계속 쌓아서 이 산의 돌들을 전부 바다로 옮겨온다면, 징검다리를 만들어서 바다를 지나갈 수 있을까?”


나는 놀랍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태껏 엉뚱한 소리를 자주 하기는 했지만, 그처럼 어리석은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계속 파도가 칠텐데. 더군다나 바다는 아주 깊고 넓은데 그 많은 돌을 어떻게 제자리에 올려둔단 말이야? 그런 건 꿈도 꾸지 마.”


그녀는 내 말에 뭔가 반박할 거리를 찾으려는 듯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동조라도 바라듯 자기 오빠를 흘겨봤다. 그 표정이 마치 ‘정말이야? 쟤 말이 맞는 거야? 아니라고 해줘’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괜스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뭐,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어뤄줘야지,’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근데 바다같은 건 굳이 건너지 않아도 돼. 네가 우리 집에 온다면……. 우리 집에 한 번 오기만 한다면 이깟 시커먼 바다를 건널 생각을 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될걸! 바다는 거칠고 무서운 거야. 그에 반면 여기에는 재밌는 게 얼마나 많니?”


“야, 헛소리 좀 하지 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뒤 편에서 대뜸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짜증이 나서 그녀의 오빠를 노려보았다.


“뭐가 헛소리라는 거야?”


“너는 버섯이야,” 그가 선언문이라고 읽듯 소리쳤다.


나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이런 멍청한 자식. 내가 버섯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몰라. 나도 어디서 들은 얘기야. 딱 보니까 그래. 너는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란 말이야!”


나는 똑바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경멸을 담은 어조만큼은 읽을 수 있었고, 화가 나서 그의 얼굴에 대뜸 뭐라고 쏘아붙여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하도 증오에 찬 양 이글거려서, 잠깐 멈칫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그냥 궤변일 뿐이야,”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내 옆에 서 있던 막내딸을 흘끗 바라보았는데, 우리의 대화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다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리로 향해 한발 한발 내딛었다……. 나는 그녀가 물에 빠지려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덤벼들었다.


“야, 뭐하는 거야! 그래, 돌다리를 놓자! 우리 집 앞 천에도 돌다리가 있지. 물론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갑자기 그녀가 하하하, 웃었다. 나는 다시 당황해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왜 웃는 거야?”


“아니, 아까 네가 그랬잖아. 그건 말도 안 된다고.”


“그랬지……. 그래도 글쎄, 아직은 아무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럼 돌다리는 그만 두자. 통나무를 연결해서 물에 띄워보자.”


“에이,” 나는 더 놀랐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파도가 치면 어쩌려고.”


“밧줄로 연결하면 되지. 여기 바닷가에서 통나무를 백 개 쯤 연결했을 때 바다에 띄워서 우리 중 한 명이 먼저 헤엄치는 거야. 그럼 나머지 둘이 그걸 짚고 건너가자, 어때? 만일 여기에 밤이 온다면, 우리가 통나무를 건너가서 낮이 있는 반대편에 도착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황홀경에 가까운 기쁨이 가득 어려 있었다.


“백개, 백개라고? 야, 그 일을 하려면 백개가 아니라 통나무 이천만개는 필요해, 이천만개! 이천만개가 얼마나 많은 건지 알아! 이 근방의 나무를 몽땅 다 베어도 모자랄 걸!”


사실 이천만개라는 숫자는 내가 아무렇게나 불러낸 것에 불과했지만, 그러자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이나 걸음이 하도 사나워서 나는 그녀가 나를 때리려는 줄 알고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나와 거리가 1미터도 넘지 않았을 때, 그녀는 갑자기 뒤로 홱 돌아서더니 조약돌을 바다에 던지고 있는 자기 오빠로 뛰쳐가버렸다.


“됐어, 오빠! 쟤는 진짜로 버섯이야! 나랑 통나무 다리를 만들어줘, 빨리!”


그녀의 오빠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야, 톱을 무슨 수로 빌리겠다는 거야?”


그녀는 결국 자기 집으로 뛰쳐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나는 바닷가에서 쓰러진 나무를 톱으로 썰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졎어있었고, 이따금씩 땀이 뚝뚝 떨어지는 이마를 닦으려고 하지도 않고 저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오빠가 말없이 그녀와 합세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대화도 나누지 않고 이 작업에 몰두했다. 나는 이런 중노동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애써보았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혹시 통나무를 밧줄로 연결해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는데, 엄마는 먼저 그렇게 많은 통나무를 연결할 수도 없을 것이며,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분명히 도중에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쳐도 그걸 짚고 건너는 도중 굶어 죽거나 질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들은 통나무 다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합세했다. 그들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고 다리를 만들었는데, 어느새 둘은 부쩍 친해진 것 같았다. 전에는 없었던 영혼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따뜻한 정같은 것이 공기를 감돌고 있었다…….


어느날 딸이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기 전까지는.


그녀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그녀의 가족을 보지 못했다. 듣기로는 홀아비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고 그녀의 오빠는 도시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문진으로부터 그녀의 소식을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처음에 누구 얘기를 하는 건지 몰라서 그에게 제쳐 그게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냐고 물었다.


“정말 새까맣게 까먹었구나!” 그가 신기하다는 듯이 외쳤다.


“대체 내가 뭘 까먹었다는 거야? 그 구린내나는 동네의 구린내나는 집에 대해서라면, 내가 기억하는 건, 우리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이런 데 다시 오지 말자고 부탁했다는 것밖에 없어.”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그 때 그 아저씨의 집에서 유독 오랜 시간을 보냈었는데. 무슨 통나무 얘기를 엄청 많이 했어.”


“통- 나무 얘기라고?” 내가 넋나간 사람처럼 읊조렸다. “무슨 통- 나무 얘기 말이야?”


“글쎄. 통나무로 바다를 건널 수 있냐, 백 개면 해볼만 하지 않겠냐, 이천만 개가 있어도 모자라지 않겠냐, 처음에는 그런 말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지. 누가 통나무 백개로 바다를 건너려고 한다면 도와줘야 할까, 같이 물에 빠져야할까, 나중에는 바다가 너무 무서운데 어떡하면 좋냐고 울기도 했지……. 그 집에서 찍은 사진도 있어. 보여줄까?”


그리고 그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심연을 가르고 바다 가장 깊은 곳에서 오래된 서약이 불끈 솟아오른 것만 같았다. 기억의 균열이 깨졌고 나는 사진 속의 끔찍하리만치 익숙하게 느껴지는 풍경, 그리고 그 속의 얼굴들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이건…… 이건, 맞아……! 이건 나야, 이건…… 그 애들이야! 맞아, 나는 그 때 통나무 다리를 만들었어!” 나는 거의 두려움을 느끼며 외쳤다. “아니, 이런 제기랄,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잊어버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진정해,” 문진이 새상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그 속에서 약간의 비웃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하도 정신이 없었던 탓에 기분 탓이라고 치부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때 그 여자애가 실종돼서 그 애 아빠가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했지……. 그런데 그 애를 찾았어. 내가 들은 바로는, 백 개째 되는 통나무를 연결하던 날에 누군가에게 붙잡혀 어디론가로 끌려갔다고 하더라. 당시 그 산골에는 인신매매범들이 있었나봐. 그리고 그곳에서 15년 동안 트럭으로 끌려다니며 일을 했는데, 얼마 전에 구조되어 집으로 돌아왔대. 그런데 무슨 몹쓸 병을 하나 얻어왔다는데, 난 듣도보도 못한 병이야…….”


“알았어,” 내가 다급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병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럼 지금 그 애는 어딨어?”


문진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는데, 이번에는 약간의 비웃는 듯한 기색조차 없었고 오히려 호기심 반 동정심 반으로 날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표정이 정말 창백하군. 충격받았나 봐. 하기야 넌 그 때 걔랑 친했어- 그 때도 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저렇게 놀라다니, 정말로 이상한데! 그 애는 지금 그 집에 있어, 다시 돌아왔어.”


나는 외할머니의 집 앞을 산책하다가 이 모든 것을 다시 떠올려냈다가, 내가 또다시 무엇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었는지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 맞아, 나는 걔를 만나기 위해 왔었어!”


그렇게 외치며 미닫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집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전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 또다시 뭔가 불쾌해졌고, 그들이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중얼거렸다.


“난 걔를 만나러 왔었어……! 그런데 걔가 누구였더라? 젠장, 나랑 놀던 친구였잖아! 걔는 지금 몹시 아프고, 그런데 왜 아팠더라? 아, 끌려갔으니까……! 통나무를 만들다 끌려갔어……! 잠깐, 통나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문진아!”


나는 왜인지 갑자기 문진을 불렀다. 그는 내가 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만 있지 말고, 뭔가 납득이 되게 말을 해보란 말이야. 대체 나한테 이 장소, 이 빌어먹을 장소가 필요한 이유가 뭐지? 아, 맞지, 나는 사람을 찾으러 왔었어! 통나무 백개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 말이야. 하지만 백 개라고? 백 개로 누가 바다를 건널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왜, 왜 하필이면 내가 저 망망대해에 빠져야했단 말이야……? 그 남아시아에서……? 아, 머리야, 씨발!”


나는 몹시 갑갑해져서 욕지거리를 하며 소리쳤는데, 나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영 이상한 짓 같았다. 마치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나는 괜히 그를 붙들어지고 따졌다.


“아니,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는거야? 왜 나한테 제대로 된 설명은 하나도 안 해주는 거야? 제기랄, 다시 머릿속이 텅텅 비워지고 있군! 나한테 장난을 치지 말란 말이야!”


“그만 해요!” 낙희가 외쳤다.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왜 그걸 이 사람한테 따지는 거예요?”


나는 불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문진을 빤히 쳐다보았는데, 이젠 숫제 역겹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지겨울 만큼 피가 마르는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젠장, 젠장……!”


그 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문진이 처음 보는 어색한 미소를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전에 없이 친절하게 말을 꺼냈다.


“낙희 말이 맞아. 지금 몹시 긴장했구나. 겁에 질려서 그래. 잠깐 안으로 들어가서 쉴까?”


그는 친절했지만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어려있었다. 지금 저 자식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날 무서워하고 있구나! 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망할 자식! 날 니네 집 개 다루듯이 대하지 말란 말이야,” 내가 씩씩거렸다.


“아니에요,” 낙희가 날 가로막았다. “원래 오랫동안 여행한 사람에게는 흔한 일이에요- 진이 빠지는 거요. 더군다나 이 더운 날씨에 충분히 먹고 마시지도 못했잖아요. 잠깐만 쉬어요. 힘들지 않아요? 힘들기 싫잖아요.”


‘힘들기 싫잖아요’라는 말이 잠시간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몹시 힘들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에 정말로 잠깐 쉬고 나면 조금 더 개운해지고 생각이 정리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내가 갈팡질팡하고 있자 그녀가 일부러 웃으며 나를 방 한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는데, 강아지를 대하는 듯한 그 태도가 결정적으로 나를 분개하게 했다.


“에잇!” 나는 벽을 걷어찼다. 쿵 소리가 나며 물건 몇 개가 가까운 탁상에서 떨어졌다.


“아니, 대체 왜 그러세요!” 낙희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말 걸지 마!” 문진이 고압적인 태도로 소리쳤다. “말했잖아. 저 사람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얼마나 질 떨어지는 놈인지 네가 몰라서 그래.”


그녀는 입을 열지 않고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약간 히스테릭한 기색마저 내비치며 문진에게 말했다.


“저 사람……. 지금 절대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안 돼요……! 그제께 밤에도 온종일 잠꼬대 하는 걸 내가 들었어요.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어요. 어디서 종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둥, 미친 검은개가 자기를 고통으로 뒤쫓는다는 둥……. 저 사람을 내치면 안 돼요. 어쩌면 열사병에 걸린 걸지도 몰라요…….”


“아무리 그래도 싼 놈이라고 해도 말이죠……,” 문진이 말했다.


나는 그들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듯이 멍하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눈과 귀가 모두 가물가물한 할머니 마저도 기괴하다는 듯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견디기 어려워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옆 집에서 약을 구해 와야겠어,” 그런 내 모습을 곁눈질하며 문진이 말했다. 그는 현관 쪽으로 향해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날 데려가요!” 낙희가 이렇게 외치며 그리로 뛰어갔다.


나가기 전 그 둘은 나를 한 번 더 미심쩍다는 듯이 쳐다보았는데, 나는 너무 지쳐서 전처럼 소리를 지르고 저항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문진은 옆에 있는 태윤을 살짝 걱정하는 듯 싶었다.


“안 되겠어요, 당신은 여기 남아계세요. 제가 되도록 빨리 다녀오도록 하죠,” 문진이 말했다.


그 순간 그가 문을 닫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편에서 칼칼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 뿐만 아니라 낙희와 태윤을 비롯한 모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방 가장 구석에서, 가장 그늘진 곳 어둠에 둘러쌓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여태껏 마치 밀랍 인형인 양 조용히 앉아 있던 장애인이었다.


“당신은…… 왜 그러십니까?” 낙희는 무섭다기보다도 어리둥절해져서 이렇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매음절을 끊어서 아주 또박또박 말했다.


그냥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찰나, 그가 두 눈으로 나를 아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돋았다.


“저 괴물 같은 놈!” 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분명했다. 분명히 나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니, 원……. 하지만 분명 저 미친 작자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내 혈관 속으로 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던 차가운 무엇인가가 뚫고 지나갔다.


“계속. 바들바들. 떨고. 있어. 좆밥.같이.” 그가 또 뚝뚝 끊기는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마저도 낯설고 두렵게 느껴져서,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그만 두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뻔히.알수. 있는데도. 알려고. 하지. 않는.거야.”


난 창백해져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로 덤벼들었다.


“아악! 병신 자식. 다 똑바로 말해. 내가 뭘 찾으려고 한다는 거야? 이 구린내나는 동네에 구린내나는 집에 대체 왜 구린내를 맡으려고 기어왔다는 거야?"


나는 내가 ‘병신 자식’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이맛살이 꿈틀 하는 것을 알아차렸고, 목발도 없이 앉아있는 그를 흠씻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그는 맞으면서도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는데, 그 낯설고도 익숙한 눈빛이 너무 증오스러워서 나는 아예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할 심정으로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쳤다. 그러나 나도 금방 기진맥진해서 쓰러졌다.


“네가 찾는 사람은 옆 집에 있잖아,” 그가 맞아서 부은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는데, 방금 전과 말투가 달랐다. 숨이 찼기 때문인지 뚝뚝 끊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에 경멸이 담겨 있었고, 바닥에 내팽겨쳐진 볼품없는 몸뚱이에도 양 눈동자 만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행여 비밀스러운 고백이라도 했다는 듯이 숨을 죽이고 속삭이듯이 빠르게 내뱉었다. “걔는 몹시 아파. 곧 죽게 되겠지. 왜냐하면 이상한 병에 걸려 왔으니까……. 죽은 사람의 살을 먹지 않으면 낫지 않겠지…….”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거짓말, 거짓말 하지 마! 죽은 사람의 살을 먹어야 낫는다고? 대학에 몇 년을 다니면서도 그딴 병은 들어본 적도 없어. 네 놈은 정신병에 걸린 병신이야!”


난 마지막 말은 그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내뱉은 것이었지만 그는 어느새 그런 말은 귓전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고, 도리어 어딘가 묘하게 신난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래, 전에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지? 뭐 네가 인정하든말든, 그건 아- 무런 상관이 없어. 그 애는 일주일 안에 죽을테니까.”


마지막 말은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나는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고막에 묵직한 포탄 같은 것이 떨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살을, 살을 먹어야 낫는다고? 대체 무슨 살을 말하는거야?” 어느덧 나도 속삭이고 있었는데, 차분한 속삭임이 아니라 극도로 흥분한 듯한 속삭임이었다. “얼마나 먹어야 하지, 한 100파운드?”


그는 또다시 이상하게 하, 하, 하, 하, 하, 하고 웃었다. “100파운드! 그거 참 좋군.”


“100파운드, 100파운드란 말이지!” 내가 혼잣말하듯 되뇌었다. 그리고 낙희나 그 집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말리기도 전에 집밖으로 도주해버렸다. 마지막으로 낙희와 태윤이 다급하게 나를 말리기 위해 무어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냅다 거리를 내달리며, 연신 ‘백 파운드, 백 파운드’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살 백 파운드를 대체 어디서 얻는단 말인가? 묘지? 아니, 이미 그곳에서 살들은 다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대체 백 파운드가 어느 정도일까, 사람 다섯을 발라버린다면 그 정도 나올까? 잠깐, 다섯이라고? 아, 마법같게도, 마침 그 빌어먹을 집에 딱 필요한 만큼의 머릿수가 앉아있지 않았던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는 스스로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엄청난 비통함이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옆집에서 뭐라도 무기로 쓸만한 것을 훔치기로 작정했는데, 예전에(언제인지는 몰라도) 그곳에서 무기로 쓸만한 것을 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그 집의 낡은 창문 밑에 웅크리고 앉았다.


어느 정도 때가 나쁘지 않다는 확신이 섰을 때, 나는 창문을 열고 조심조심 집 안으로 잠입했다. 5분 후 나는 커다란 톱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무기를 어떻게 숨기느냐는 것이었다. 그거야 쉽지. 나는 산으로 들어가서 나무 뿌리 밑에 난 구멍에 벌레들을 쫓아내고 그 무기를 집어넣었다. 이제 때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는 한동안 길없는 으슥한 산골을 왔다갔다 했다. 산이란 몹시 갑갑하고 어두우며, 온갖 시체들과 실종자들이 한데 묻혀있을 것처럼 불길하다. '저 바다보다야 낫지, 바다보다야 나아,' 내가 중얼댔다.


어느덧 다시 밤이 되고, 보름달이 띄고, 밀물이 가득 차올랐다. 서정적인 장관이 내 눈앞에 펼쳐졌지만, 나는 그 거대한 달을, 마치 은으로 된 거울같은 그 거대한 달을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었다. 이건 저주야! 나는 그렇게 절규하며 냅다 내달렸다. 그리고 살금살금, 조용히, 집의 망을 보았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맞아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계시라도 떨어진 듯, 그 빌어먹을 집은 어제와는 영 딴판으로 켜진 불 하나 없이 완전히 땅거미가 져 있었다! 아마 저 집의 구더기들도 모조리 잠에 들었으리라! 그 괴물같은 사람들, 외할머니, 장애인, 낙희, 문진을 비롯한 모두가 다 잠들었을 것이다!


‘설사 깨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는데, 만일 그 순간 누군가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기괴한 일그러짐이었다고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번에도 창문으로 들어갔다.


‘먼저 통나무를 연결하고, 그 다음에 바다로 헤엄쳐서 가져가는 거야.’


그래, 먼저 죽이고, 그 다음에 살을 바르는 것이다……. 나는 톱을 들었다. 모든 일을 최대한 신속하게 하기 위해 나는 잠시간 사람들의 상태와 중요 부위의 위치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문진, 태윤, 낙희, 외할머니 순서로 차례로 작업에 들어갔는데, 문진은 재수없게도 죽기 전에 나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장애인, 이 걷지도 못할 병신 새끼가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상당히 초조한 마음으로 살을 바르려는데, 새삼 톱으로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부엌에서 과도를 가져와 천천히 붉은 등불 아래에서 하나씩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살을 담을 그릇도 없었고, 나는 별 수 없이 냉장고를 열고 안에 든 음식물을 비운 후 그 안에 차곡차곡 살점을 담아넣기 시작했다…….


‘이 일도 익숙해지는군,’ 나는 후련하다는 듯이 낄낄댔다.


동이 트기 직전 여명이 밝아올 때 즈음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이제 한 놈만 더 잡으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핏덩어리들을 지고 돌아다니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 뻔했고, 나는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다. 그래, 바로 이 집에 그녀가 있었다!


집 안은 어두웠다. 아직 동이 튼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집은 마치 밤처럼 어두웠다. 나는 아무쪼록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핸드폰 라이트를 켰다. 창백한 빛깔이 낡고 더러운 집을 비추었다.


라이터 빛의 끝에 사람의 형체가 비추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아, 저 사람은, 그 미쳤다는 홀아비가 분명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전에 없이 씩씩하게 인사했다.


그는 나의 형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빛바랜 눈을 점점 더 동그랗게 떴다. 후레시에 비친 그의 얼굴이 마치 짐승의 것처럼 느껴졌다.


“오- 오오, 오오오……,”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는 입을 다시더니 천천히 말을 했다- 아마 오랜 시간을 거치며 말하는 법을 슬슬 잊어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댁은…… 손에…… ㅍ, ㅍ, ㅍ………”


“피요, 피!” 내가 격양된 소리로 외쳤다. 나는 홀린 듯 성큼성큼 더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난 당신의 따님을 살리려고 왔습니다. 여기, 죽은 사람의 살이 있어요! 내가 온종일 이것을 발라냈죠!”


마지막 말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에서 평범한 자랑거리를 떠벌리는 양 싶은 어조가 묻어났다. 난 그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왼쪽 팔을 들이밀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눈과 입을 점점 더 동그랗게 벌릴 뿐이었다. 내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네 명 분이에요, 네 명!” 나는 손가락까지 그의 앞에서 쫙쫙 폈다. “아마 100파운드는 안 되겠죠. 하지만 금방 더 구해오겠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될까요?”


나는 내가 허공중에다 대고 혼자 연극을 하고 있나 싶을 정도의 암흑과 침묵을 마주해야 했는데, 라이터로 보이는 그의 표정은 너무도 창백하고 이상했으며, 아주 약간의 긍정적인 반응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괴물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상한 비명같지도 않은 괴성을 내었다. 그러면서 미친 동물처럼 몸을 앞뒤로 반복해서 흔들거렸다. 울부짖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점점 더 화가나고 피가 말랐다.


“아니, 어째서, 이게 무슨 하나 뿐인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자에게 아버지가 대접하는 방식이란 말입니까?” 내가 소리쳤다. “도무지 이해가…… 가만히 있어! 나는 이 안으로 들어갈거야!”


내가 성큼성큼 그를 향해 다가서자, 그는 더더욱 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 이상한 ‘오- 오-’하는 울부짖음을 이어갔다. 나는 들고 있던 살점 용기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톱을 꺼내들었다. 그는 그러나저러나 비쩍마른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눈을 동그랗게 부릎뜨곤 외쳐댔다.


그때 나는 톱을 꺼내들어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몇 분 후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현관에 불을 켜두고, 그곳에서 그의 살을 발라버렸다…….


그의 살을 담을 용기는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손으로 피묻은 미끈한 살점들을 운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분은 날아갈 듯 좋았다.


너는 이미 죽은 거야, 자유다, 자유! 누군가가 내 전두엽에 앉아 소리쳤다. 턱이 바르르 떨렸고, 난 짜증이 나서 오른손으로 턱을 붙들었다. 그러나 이제 손까지 같이 벌벌벌벌 떨리는 것이 아닌가?


제기랄, 빌어먹을.


난 당장 안쪽 방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아까 아버지가 앉아있던 문턱 뒤편에 침낭을 깔고 누워있었다.


“내가 찾아왔어, 내가! 내가 찾아왔어! 살 백 파운드! 자, 이제 이걸 먹고 살아날 때야!”


나는 이번에도 라이터의 창백한 빛으로 그녀의 모습을 비추었는데, 뼛가죽밖에 남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실제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폭삭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느껴질 새도 없었다. 당장 이것을 저 년한테 먹여야겠다, 그 생각 뿐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새하얗게 질려 눈만 껌뻑버리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는데, 갑작스레 옛기억이 댐이 터진 듯 쏟아져나와 나는 말할 수 없는 흥분 상태에 있었다.


“젠장, 당신이 꼭 이렇게 나와야겠다면, 내가 이것을 당신의 입 속에 집어넣겠어!” 내가 외쳤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나는 그녀의 입을 벌려서 내가 가져온 것을 한 덩이 한 덩이 쑤셔넣기 시작했다.


"먹어, 먹으란 말이야, 이 괴물 같은 년아!"


그녀는 몇 번이나 구역질을 했고, 토를 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주 참을성있게 계속해서 몇 시간 동안 그 작업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 피부가 목구멍으로 용케 넘어가려던 찰나, 그녀가 갑자기 파래지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숨을 쉴 수 없다는 듯 고통스레 몸부림치더니…… 그대로 쓰러져 죽어버렸다.


난 망연자실해서 소리쳤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 난 백 파운드를 구해왔는데! 어떻게 그냥 죽는단 말이야…….? 그래, 그게 백 파운드가 안 됐던 거야...... 그 빌어먹을 노인네들이 밥을 바짝바짝 아껴먹는 통에 백 파운드가 안 됐던 거라고!”


그 절규는 진심이었다. 어떻게 그냥 죽는단 말인가! 나는 완전히 얼이 빠진 채 그 자리에서 몇 초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또다시 뒤편 어둠 속에서 지옥같은 나직하고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라이터를 그쪽으로 비추었는데, 이번에는 엄청난 분노에 차 있었다. 전과 같이 깔, 깔, 깔, 깔, 하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나직하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였지만, 난 그가 망할 장애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난 네 말대로 백 파운드를 구해왔어. 내가 이 한나절 만에, 네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구했던 백 파운드를 구해왔단 말이야! 그런데 왜 그냥 죽은 거지……? 분명 양이 부족했던 거야! 네놈까지 죽이고 나면 백 파운드는 넘고도 남겠지! 난 당장 네 벌레같은 놈을 죽이고야 말겠어! 죽이겠다고!" 내가 부르짖었다. 그때 그를 향해 덤비려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백. 파운드, 백. 파운드, 라고!” 그가 숨 넘어가듯 괴상하게 웃어댔다. “이를 어쩌면 좋나! 백 파운드라니, 오, 저 애를 구하려면 이천만 파운드는 필요해, 이천만 파운드! 이천만 파운드를 무슨 수를 써서 구할 수 있겠냐?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붙잡아 와도 모자랄걸!”


그가 웃어젖혔다. 나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뭔가 익숙한 것을 느끼고는 전율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그를 죽일 생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톱을 들어 그에게로 쳐들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는데, 또다시 내가 참을 수 없는 그 눈빛…… 그날 해변가에서 나에게 ‘넌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라고 말할 때의 그 눈빛 그대로였다! 난 웃음과 비명의 사이 쯔음 되는 괴성을 내질렀다. 오, 그래, 이렇게 되었었구나!


어느새 이 집에는 버섯이 온통 가득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렇게 습하고 낡은 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내가 아무리 그를 찌르고 눕히려고해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연신 목구멍에서 계속 이상한 간지러움과 통증을 느꼈다. 그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웃었고,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어 그의 머리를 잘라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 때, 아예 그의 사지를 잘라버리고 눈알도 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내가 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이 간지러웠고 통증이 느껴졌다. 그 때 난 내 온 몸 위로 버섯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내 목구멍을 뚫고 입밖으로 쑤욱쑤욱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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