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

 

내가 그를 만났을 때 우리는 멜로소토에 있었다. 낮밤으로 어찌나 무더웠던지 온종일 몸에 땀줄기가 주륵주륵 흘렀다.


그 외에도 멜로소토는 아주 불쾌한 도시였다. 차가 한 대도 지나갈 수 없을 법한 비좁은 비포장 도로 사이사이로 온갖 오물들이 투척되어 있어 늘상 악취가 났다. 개중에는 개의 대변과 소의 대변과 말의 대변과 인간의 대변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아주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에어컨이 없어 후덥찌근했고, 건물은 햇살을 피하는 것밖에 도움되지 않았다. 나는 이 낯선 땅에서 고향 사람, 그것도 내 또래의 고향 사람을 만나 무척이나 반가웠다.


“요새 뭘 하고 지냅니까?” 내가 통상적인 질문을 던졌다.


“비행기를 기다리죠,” 그가 짦막하게 대답한다.


“비행기는 언제 온답니까?”


“여름이 끝나면.”


내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멜로소토에 여름이 언제 끝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는데, 눈빛이 몹시 슬퍼보였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와, 그가 머물고 있는 셋방으로 향했다. 건물건물은 대게 절도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창으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저 여자는 왜 저기 앉아있을까요?”


“탈장 때문일지도 모르죠.”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금방 알아서 처리하고 제 갈 길 갈 겁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무슨 일을 합니까?” 내가 물었다.


“난 작갑니다.”


내가 웃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작가죠, 블로그에 글을 쓰니까요.”


그가 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게 자기가 쓴 시집을 한 권 꺼내주었다.


“시를 좋아합니까?” 그가 내게 묻는다.


“좋은 시라면, 왜 마다하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가 또 ‘아’하고 탄성했고, 한동안 우리는 뜨거운 적막 속에서 숨을 쉬었다.


“문학을 하는데 뭐가 제일 필요한지 아십니까?”


그가 돌연 물었다. 내가 대답을 보류하자 그가 중얼거렸다.


“‘오만함’입니다.”


“아.”


“나같은 사람들이 다 이렇겠죠,” 그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작가로써가 아니라, 인간으로써 말입니다. 그게 내가 20대를 보낸 방식이죠. 나는 20대를 대학에서 떼울 수도 술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자만심으로 먹고 살았다 이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마침 식탁 위에 놓여있던 상표없는 소주 한잔을 들이마셨다.


“그 자만심이라는 것이 몹시 맛있는 모양이군요.”


난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는 진지했다. 그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삶의 나머지 모든 걸 다 합쳐도 그것보다 달콤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금 우리 사이에는 얼마 간의 침묵이 흘렀다.


“선생, 나는 사기꾼입니다,” 그가 갑작스레 선언했다. 그는 마치 내가 뭔가를 묻기를 바라는 듯 또다시 눈을 빛냈다. “당신은 내 삶이 얼마나 값싼지 모르겠지요. 지금 제 옆집에는 아가씨 한 분이 계시는데,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도시에서 날품팔이를 했어요. 눅눅한 간식 쪼가리를 들고 남의 가게를 전전하며, 큰 소리로 외치지도 못하고 구석에 앉아있는 아이에게로 가서 한 번 받아주라는 둥 '맛있습니다, 맛있어요' 하는 것입니다. 아이 엄마와 가게 주인은 언짢은 표정으로 '됐습니다, 나가세요'하고 대답하고……. 둘이 하루 종일 땡볕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도착하면, 단단히 문단속을 하고 남은 음식을 먹고 서로 끌어안고 바닥에서 잠에 듭니다. 어머니가 더이상 몸을 못 쓸때까지요. 그러면서 그냥 그런대로 저녁이 되면 기도를 하고 아침이 되면 얼굴을 씻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속세'를 벗어나 방랑하는 사람인 양 지껄여대는 나는, 아직도 나이가 오십이 넘은 부모님에게서 생활비를 받으며 구더기같은 생활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난 벌레같은 놈입니다, 선생.”


그는 시구라도 읊조리듯 말하며 한 잔을 더 들이켰다. 그러더니 내 표정을 한 번 보고,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런데 이 도시가 내게 가장 특별한 점은, 이곳에 도착한 이유로 유독 악몽을 많이 꾼다는 겁니다. 당신은 악몽을 꾸나요?”


“아니…… 글쎄요, 사실은, 꿈을 꾸는 족족 잊어버립니다.”


“나는 말입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매일 악몽을 꾸었고 꿈을 생생히 기억하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정말 예술가스러운 현상 아닙니까……?” 그가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하죠. ‘나는 괴물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괴물인 것인가?’ 선생, 나는 구원받고 싶습니다.”


“교회에 가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교회라고요!” 그는 온 몸을 부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다시 차분해졌다. “...하기야, 꿈에 악마같은 것이 나오는데, 가끔 너무 무서울 때면 나도 심장에 십자가를 그어댑니다. 저게 나를 덮치면 어떡하죠? 나는 지금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선생, 나는 구원받고 싶습니다!” 그가 고통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쩌죠……? 나는 사기꾼에 불과한데! 예수가 있다면 나를 보고 슬프게 미소지어줄 지도 모르지만, 예수가 없다면 그땐 어떡합니까? 선생, 나는 없는 줄 뻔히 아는 것을 숭배할 수 없어요.”


“예수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으려고 했던 겁니까?”


“사악함으로부터요, 선생, 나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술을 한 잔 더 들이마셨다.


“당신을 너무 오래 붙들었고, 몹시 지치게 했군요,” 그가 말했다. “모든 이야기는 속전속결이 중요한데 말이죠……. 선생, 그러니까 나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이요?”


“예, 정확히는, 내가 사랑할 만한 여자를 말이죠, 아,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아무 말도! 날 비난하지 마세요. 나는 몹시 구원받고 싶었습니다. 내가 광기에 절여져 미쳐버릴까봐 두려웠고, 나 자신을 잃을 지경에 다다를까봐 두려웠습니다. 당신은 그런 적이 있습니까?"


"아뇨,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네요," 내가 놀라며 말했다.


"난 줄곧 저런 생각 때문에 못 살겠을 정도로 고통받고는 한답니다. 그럴 때마다 불안함에 사로잡혀 심장을 붙잡고 골몰하는데, 딱 한 가지 생각이 위안이 되더라는 겁니다……. 내 세계가 설사 붕괴하더라도, 내게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나의 인생은 이미 빛인 게 아니겠습니까? 난 환상을 따라 방황을 자처했던 겁니다. 선생, 다른 건 아예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는 그가 미쳤거나 몹시 취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어조는 거북할 정도로 격양된 감이 있었다. 사실 나는 점점 더 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혹시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한 다음,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떨까요?"


“‘대학’이라고요!” 그가 또 이렇게 외쳤는데, 아까전에 기독교 얘기를 꺼냈을 때의 일곱 배로 더 화나버렸다. “대학이라고요! 아, 그깟 대학은 다 좆까라고 해요! 선생, 난 대학에 갔습니다! 수학을 공부했는데, 그나마 순수해보이는 것들 중에서 골라 기어들어간 것이었어요. 그런데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재미가 없으셨나요?”


“아뇨, 아뇨,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딱 재미가 있는 수준이었어요,” 이렇게 말할 때, 그의 얼굴에 오만함과 경멸을 뒤섞은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그것보다는 글쓰는 게 더 끌리셨나보죠?”


“글쎄요,” 그가 특유의 오만해보이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이건 초콜릿이다. 이건 빌어먹을 초콜릿이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안 되는데요.”


“그러시겠죠. 그러니까 내 말은, 꼭 온 세상 사람들이 작정하고 나를 초콜릿으로 구슬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자, 친구, 그만 진정하라고. 진정하고, 우리와 손을 잡자. 우리가 네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봐. 자, 보이지? 여기 초콜릿이 있잖아. 네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지. 어때? 할만 하지? 어유, 착해라. 이젠 숫제 화조차 나지 않을거야! 네가 미친다고? 아-니, 누가 그딴 소리를 한단 말이야? 야, 우리랑 같이 있으면, 미칠 일도 없고, 아예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어!’ 자,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나한테 이런 소리를 해대는 통에 난 몹시 괴로워졌다고요, 선생!” 그는 열띤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무얼 위해 살아야 합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게 전부 사실이라면, 저 초콜릿으로 행복해진 인간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시인들은, 또 우리 사기꾼들은, 도대체 다 무슨 쓸모란 말입니까? 선생, 한국은 딱 이런 나라입니다. ‘이걸 봐라, 살만 하지? 초콜릿이야! 초콜릿!’”





-


“내 바로 옆 방에 누가 사는지 압니까?”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의 표정이 마치 사람이라도 한 명 죽이고 온 것 같이 어두워서, 살짝 놀라기까지 했다.


“지난번에 초콜릿 얘기를 하면서 뭔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당신 방에 비해 좁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방범창이 쳐져 있지 않은 것까지 기억합니까?”


“그건…… 그랬던 것도 같군요.”


“그 방에는 제 나이 또래 여자 한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약간 홍조를 띄고 있었다.


“7년 즈음 전, 제 옆집 여자는, 오늘 설명하기는 힘든 복합적인 이유로 매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뭔가를 더 설명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쩐지 망설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람이 당신이 찾고 있다는 여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새 빈민구제정책 이후로 그 사람은 무슨 벽돌 공장에 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건강상 치명적인 문제를 얻게 된 모양입니다,” 그의 눈빛에서 또다시 증오같은 것이 스쳐지나갔다. “그 외 구질구질한 사건들 후, 4년 만에 또다시 그 일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침울했는데, 이상하게도 눈은 아주 반짝거렸다.


“당신은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나봐요,” 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지도 몰라요, 선생, 그럴 지도 모른다고요!” 그가 바득바득 열을 올리며 외쳤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그래 보이는군요.”


“‘그래 보인다’라, 제길, 희망적인 소식이 있기를,” 갑작스레 그의 표정과 어투는 아주 암울해졌다.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군,’ 내가 생각했다. “사실 나는 아주 끔찍한 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건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당신에게 다 털어놓게 될 거예요- 그럴 거라는 예감이 들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하기야 나같이 구더기같은 인간이 어떻게 인생의 무게를 알겠습니까. 감히 입에 올리는 것도 못할 짓이지요.”


그는 이렇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고는 사라졌다.





-


바로 다음날 그는 저녁 무렵 나를 찾아와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는 어제보다도 훨씬 흥분 상태에 있었는데, 약간은 공포에 질린 것 같기도 했고, 연신 맥락에 맞지 않는 말들을 되뇌었다. 나는 설마 그가 예전에 나한테 말한 대로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선생.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당신 옆에 있지 않으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전부 어디서 고백할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물, 물이 없습니까?”


난 그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마시기는 커녕, 자기 머리에 부워버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내가 놀라며 외쳤다.


“머리를, 머리를 식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해서 식었습니까?”


그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는 확고한 결의를 한 듯 선언했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난 이자리에서 모든 걸 다 토로하겠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는 것과 같은 위대한 반전은 없을 테지만요. 선생, 말하자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서스펜스 밖에 없는 멍청한 심리 드라마 같은 겁니다. 휴, 하지만 내게는 얼마나 큰일인지……,” 그는 옷자락으로 머리에 묻은 물을 좀 닦았다. “말을 놓아도 되겠습니까?”


난 이 난데없는 제의에 당황해서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아니, 고맙군요……? 아니, 아니지, 인사는 그만두자!” 그가 숨을 몰아쉬며 횡설수설했다. “지금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말을 꼭 놓아야겠단 말이지. 어서 나한테 반말을 해봐. 그래야 내가 더 쉽게 반말에 적응할테니 말이야.”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냉수를 마셔. 그닥 차갑지는 않을 테지만, 없는 것보다 나을 거야.”


“고마워, 훨씬 도움이 되네. 이 얼마나 따뜻한 말이야,” 그는 이렇게 말하며 찬물을 들었는데,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잔을 또다시 얼굴에 들이부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방범창이 지금 없다는 말을 했던가?”


“했지. 왜, 설마 그리로 들어가려는 거야?”


내 말에 그의 얼굴이 아주 창백해졌다.


“인간이란 놀라워,”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는 느닷없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영혼이 바로 이 앞을 걸어다니는 것만 같군. 그래서 당신이 그걸 관측하고 있는 것만 같아……. 그래, 나는 그것과 꼭 비슷한 일을 할 것 같아. 난 그녀가 먹고 싶어. 먹고 싶다고. 내일이나 모래쯤 새 방범창이 들어올텐데, 나는 그 전에 일을 감행하고 싶어. 난 내내 이 결판을 미루고 있었어.”


“실례지만," 나는 잠시 망설였다. 둘 밖에 없었지만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 여자는 그런- 일을 한다고 했잖아.”


“뭐, 그랬지……” 그가 더듬거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 그는 이 말이 마치 폭탄선언이라도 되는 듯 온 몸을 잘게 떨었다. “휴, 내가 얼마나 악마같은 놈인지 안다면…… 아니, 어쩌면 넌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제길, 난 내 영혼 따위는 관심도 없어, 어제까지만 해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이젠 중요한 문제도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영혼인데…… 말해봐, 그게 내 영혼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봐도 되는 거냐? 내가 문을 두드리고 기어들어가서, 그 인간이 서랍장이라도 되는 듯 내멋대로 들춰대도 되는 거냐?”


나는 잠시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글쎄... 하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거야.”


그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 참…… 그것 참 놀라운 말이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다니. 하지만 네가 날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어. 난 말이지, 내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상한 욕구들에 시달리고 있었어. 말하자면 사람을 괴롭히고 싶다는 욕구 말이지. 정말이야. 난 범죄자들의 어록에서 뭔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니까.”


“그래도 하지 않을 거야. 이런 건 어렸을 때 혼자 하는 망상과는 완전히 달라.”


“그 ‘이런 건’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야, 나는 죄를 지으려는 게 전혀 아닐지도 몰라. 난 그냥 적당히 거래를 하려는 것 뿐이야…… 잘 들어봐, 내가 그날 그녀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다른 남자가 방문할거야. 내가 그녀를 방문하는 것은 어쩌면 전혀, 전혀 범죄가 아닐지도 몰라. 그게 범죄라는 것은 어쩌면 말이야……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일지도 몰라!”


그는 이렇게 외치며 숨을 헐떡였다. 어쨌거나 그가 원하는 만큼 모든 감정들이 깔끔하게 표현되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했고, 자기가 하는 말들을 통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난 그냥……” 내가 말을 더듬거렸다.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를 선택할 줄은 몰랐어.”


“‘그런 식’으로?” 그가 눈을 껌뻑였다. 그러더니 손뼉을 딱 쳤다. “그래, ‘그런 식’으로! 이건 꼭 범죄자다운 발상이다. 아니, ‘범죄자’보다는 ‘괴물’이 더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 이건 꼭 내 악몽에 나오는 괴물들이 할 법한 발상이야. 그 빌어먹을 정치인들이 할 법한 발상이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괴물’ 자체가 가짜일지도 몰라.”


난 그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랐고, 그도 잠시간 말을 멈추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는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아예 내 안에 존재한 적도 없는 욕구였던 양…… 조아릴거야.”


“그럴 것 같았어."


그러나 그의 표정은 연신 심각했다.


“하지만…… 만일 그것마저도 순수하지 않다면 어떡하지? 내가 저열하게 조아려버리면 어떻게 해?” 그의 시선은 이제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고, 마치 자기 꿈속을 헤메는 듯 불안정했다. “오오, 난 정말로 하고 싶어,” 그는 갑자기 달라진 표정으로, 이상하게 웃었다.


“걔가 당황하는 꼴을 보고 싶어. 또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그런 자를 보고 고작 구더기다운 정욕에 빠지다니! 하지만 난 그냥 인간일 뿐이야. 내가 오늘밤 그 분에게 지폐 몇 장을 준다고 하면서 덮칠지도 몰라. 내가 왜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건 말이지, 내가 '사랑'한다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전부가 고작 저열한 욕망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내일이나 모레 즈음에, 내가 한국 땅은 다시 밟지도 않고, 쓰라린 순간들에만 휩싸여서 십 년을 살다가,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 되면 정신이 아예 붕괴해 버릴지도 몰라…….


이딴 걸 다 뻔히 알고서도, 딱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내가 방문 앞에 서 있고 그 문이 열려있는데, 내 손에 지폐 몇 장이 마침 딱 들어와있다면, 그래서 선택의 시간이 1초도 남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지옥에 문지기라도 있었더라면! 하지만 그녀의 침실 창문은 문지기는 커녕 뻥뻥 뚫려 있는데! 잠시라도 날 절제하지 못하면 그녀에게로 뛰어들게 될거야. 난 이걸 평생동안 상상해왔어. 당신은 나같이 저열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무한한 짜릿함을 모르겠지. 내가 오늘 뛰어들어갈까, 뛰어들어가지 않을까?”


그는 도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좁은 방을 빙빙 돌며 서성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금방 벌떡 일어나서, 어쩐지 충혈된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하지 않을 거라고? 그건 잠꼬대 같은 소리야! 난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왜 안 된단 말이야? 그 좆같은 ‘미풍양속’이라는 게 대체 뭐야, 멍청이들이 아무렇게나 자기들 만족스러운대로 갖다붙인 것이 아니야? 어쩌면, 어쩌면 말이지, 문명이 있기 전에는 말이야……,” 그가 거들먹거렸다. “누구나 누구를 덮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나의 구원에 대해서라면, 어쩌면 이것도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지도 모르지. 난 내가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먹고 싶으면 먹고, 동정심이 들 때면 잘해줄 거야. 다 내 마음이야!”


그는 그렇게 외치더니, 무엇에라도 홀린듯 쏜살같이 문쪽으로 뛰쳐갔다. 그가 떠나기 전에, 나는 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내일 아침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그 땐 내 집으로 돌아와 줘!”


그는 잠시간 돌처럼 멈춰서더니, 아주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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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누군가가 내 방 문앞에 나타났을 때, 난 그가 누구인지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난 두려움을 수반한 이상한 냉기같은 것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칼에 찔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그땐 내 집으로 와줘……’


그가 내 말에 응답을 했던가? 아니었다면 대체 왜 날 찾아온 것일까?


‘난 저 사람의 광기가 무서워,’ 내가 속으로 생각했다.


난 겨우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즉시 후회했다. 그는 사람을 한 번 농락한 자의 표정이라기보다는, 거의 대학살이라도 자행하고 온 듯한 끔찍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지른 거야! 아니면 누구를 죽인 거다!’


“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겨우 물었는데, 어느새 다시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그는 얇고 핏기없는 입술을 바르르 떨더니, 이상하게 미소지었다.


“했어?” 내가 듣기에도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난 속으로 놀라워했다. ‘고작 이 정도 일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떨고 있는 거냐, 마치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는 듯이?’ 그러나 그 즉시,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형법상의 죄가 아님을, 그것보다는 저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 자체임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안심되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너무 기괴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난 갑자기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었어,”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난 그 창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는데, 도덕적인 논쟁보다도 그녀의 다리가 머릿속을 빙빙 멤돌더니, 창문 사이로 스미는 빛 사이로 그 형체가 보이자, 그냥 저리로 들어가버리고, 나머지는 나중에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창문을 살짝 열었는데…… 안에서,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그가 말을 멈추었고, 나는 잠시 기다리다가 약간 긴장한채로 물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간 입을 열지 않으며, 또다시 격양된 듯한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눈물 없이 울고 있는 것 같았어. 가끔씩 가슴은 아주 쓰라린데, 통곡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거든. 난 그런 느낌을 알지. 끔찍해, 내가 바로 그 감정을 알아. 난 그리로 들어갈 수 없었어.”


그는 다시금 말을 멈추었다. 내가 또 ‘그래서?’하고 물었다.


“난 들어가서, 사과하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그 순간,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내 온 몸을 휩쓸더라. 난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구원이구나, 싶었어,” 그가 읊조렸다. 그리고 다시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알아?”


잠시 시간이 흘렀고,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과 함께 되물었다. “어떻게 됐는데?”


“그 때 때마침 문으로 털이 난 남자 둘이 기어들어왔고, 나는 쥐새끼처럼 그날 밤 내내 창문 턱에 숨어서 그 속 풍경을 유심히 지켜봤어!”


난 달리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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