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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나는 어리석다'고 말할 때, 혹은, '나는 섹스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 정말로 그 문장 그대로의 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 자신을 한 번 더 자체적으로 구분짓고 외부에서 보듯 바라보며 그 행위에 만족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안에서든 밖에서든 내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나는 기만적이다. 사실상 나는 일종의 연극 배우 같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배역을 강제로 맡았을 경우 떨떠름하고 소심하고 내현적으로 폭력적이고, 내가 마음에 드는 배역을 슬쩍 훔쳤을 때는 이기적이고 선정적이다. 하여튼 그 가면들 뒤에 있는 총체적 나는 이따금씩 그 불안정성에 전율할 뿐 무능하고 게으르기 그지없다. 나태와 방랑처럼 나를 망친 것이 없다. 하여튼.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가진 모든 감각들을 글로 쓰려고 시도함으로써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로인해 단편소설을 썼다. 일상적 행복이라는 것이 내게 있었지만 그것들은 뭐랄까,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에서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주변의 RPG같은 것에 불과하다. 지긋지긋하다. 떨처내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나를 지움으로써 나머지 부분에 편재하는 괴상한 자아, 그러니까 ㅡ을 상기시켜주었다- 대체 왜 당신은 당신을 병명으로 규정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런 조잡한 명칭이 내게는 일종의 자랑거리일지도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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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글쓰지 말고 그림이나 그리자. 글은 답이 없다. 글을 쓰려면 맨정신이여야 하는데 난 맨정신인 것 같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봐도 맨정신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가상의 인간이었으면 좋겠고, 내가 만든 나 때문에 내가 못박히고 고통스럽다. 그러니까 나는 좆되고 싶지만 동시에 좆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향후의 나에 대해 알 수가 없고, 내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명뿐이다. 내 얼굴, 내 집안, 내 성격, 내 머리, 내 어- 뭐가 됐던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에게 지나친 감정을 쏟는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아무것도 내게 투명해보이지 않는다. 내가 설사 보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내 심장에는 이미 족쇄가 많이 채워져있다- 이건 무슨 중2병같은 표현이지. 자유만큼 날 구속한 것이 없고 구속처럼 내 자유의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없다. 철학은 좆까라. 난 지혜에는 관심없다. 난 나 자신을 팽창시킬 것이다. 더러운 상념들. 그리고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면 나는 급하게 죽어버림으로써 내 몫을 챙길 것이다.
얼마후: 웃기네. 어쩌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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