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인간
나는 권총을 관자돌이에 맞대고 있었다. 이것은 세상이 나에게 내리는 사형 선고이다. 나는 숫제 나를 혐오하던 사람들의 구설수에 모욕적으로 오르내릴 것 마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단지 이제서야 내가 예정된 비극의 끄트머리로 돌진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목숨이 벼랑 끝에 내몰린 듯 위태로웠고, 나는 나 자신에게 공포를 체감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권총 끝의 블랙홀 같은 어둠이 나를 응시했다. 나를 지하로 데려갈 열차였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 내가 마취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저들은 내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나는 비탄에 차서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나는 휠체어를 끌고 병실의 세면대 앞으로 끌고 갔다. 거울 속에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스스로를 자해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나 자신을 대면하고 있다보면, 권총으로 당장 이 얼굴 낯짝을 쏴버리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만, 병신같은 두 다리를 보고나면 아니다, 이 다리를 쏘아야한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고쳐먹으면 당장 내가 쏘아야 하는 것은 사타구니였는데, 저곳에서야말로 이 모든 비극이 탄생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휠체어를 이끌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일부러 사람이 많은 대로 앞을 지나갔다. 그들은 잠시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다. 모든 인류가 나를 혐오한다. 나는 기형아였다.
내 엄마는 나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흐느껴울며, 스스로의 죄악과 운명을 저주했다. 그러나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낳은 것은 반쪽만 인간이었고 반쪽은 바퀴벌레처럼 징글징글한 괴물이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 그녀가 나에게 자행했던 모든 학대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한때는 그녀를 죽여버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내가 나의 어머니에게 싸질렀던 모든 욕설과 모욕들. 그것들은 나의 ‘추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외형과 어우러져 날 모두가 혐오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한때 나는 모든 것을 내버리고 종교에 의지하려했다. 아무도 나에게 성경책을 읽어주지 않았기에 나 홀로 성경을 낭독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아직까지도 저 말은 나를 울부짖고 흐느끼게 만든다. 나는 아직까지도 예수를 믿는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쯤 지옥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몇년 전 나는 캠프에 갔다. 나처럼 온 몸이 벌레처럼 변형된 괴물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내게는 다가서고 싶지 않아했다. 그들 중 한 명, 나와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앉아있는 조그마한 남자 하나가 내게 말을 걸던 것이 생각난다.
“당신은 사피엔스를 믿나?”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사피엔스라니요?”
“혹시 꿈이 있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시선으로 저편을 응시하며, 어쩐지 절박한 단결에 찬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에게는 꿈이 있네. 여자와 결혼하고야 말 거야.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짠다고 비웃을 지도 모르지만(그는 특히 이 부분을 강조하며 방어적으로 말을 이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네……. 얼마 전에 아는 사람이 남쪽에서 온 괜찮은 처녀랑 결혼을 했다더군- 그 사람은 장애인이었네. 물론 나와 처지가 같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겠단 말일세. 이건 내 비뚤어진 정욕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야. 이 모든 수모 후에도, 난 아직 사피엔스를 믿어……. 다시 모든 섭리가 제자리로 돌아올거야……. 반드시, 반드시!”
마지막 말은 나를 향한 말이라기 보다는 혼자서 하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그는 우리가 있는 곳 바로 옆에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기라도 한 듯 허공을 붙잡고 늘어놓았다. 나는 얼마 전에 그가 차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혼자였다.
‘어떤 인생은 말이지, 부정하고 눈감은 척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인생이 있어. 자기 것인데도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삶이 있어…….’
벌레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용서해야 한다.
나도 어렸을 때 치졸한 짓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은 아주 이상한 파티였는데, 암흑 속에서 가면을 쓴 채로 진행했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떠들고 대화를 나누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어떤 여자를 만나기까지 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고나자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설사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어떤 모습을 한 사람인지(난 이 말을 듣고 온 몸을 떨었다) 모른다해도, 난 한 가지를 알고 있어요. 내가 여태껏 만난 사람들 중, 당신은 가장 마음이 넓고 영리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녀가 내 몰골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두 눈으로 보기는 커녕 그 검은 베일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듣기만’ 했을 때, 그녀는 몸을 떨더니 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 실례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가늘게 떨렸는데, 단지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감에 차서 두려워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도 이게 옳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나를 버리고 쏜살같이 달려가려는 찰나, 나는 알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혀 베일을 벗고 덥썩 그녀에게로 덤볐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그러나 이제 그 기억은 내게 죄스러움을 제외한 어떤 감정도 끓게 하지 못한다.
나는 그 이후 줄곧 검은 베일로 날 가리고 다녔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다.
‘삶의 이런 부분은 말이지, 따지고보면 다 상관이 없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내 육체가 땅에 묻혀 더이상 누구에게도 공포감을 유발할 수 없게 된다면, 그제서야 나의 영혼은 내 형상으로부터 해방되겠지,’ 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분노하게 했던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어. 바로 내 영혼 자체가 죽어가야 했다는 것 말이야……. 나는 무엇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매일 밤 스스로가 곰팡이라도 된다는 듯이 죽어갔을까? 이십 대 때, 내 안에 들어찬 것은 다른 어떤 감정도 아니고 오로지 복수심 뿐이었으니! 그들은 나로 하여금 나의 영혼을 교살하도록 교사했던 거야……. ’
내가 마취총을 맞고 구조되기 이틀 전, 우리 도시에는 새로운 법령이 하나 공표되었다. ‘도시안전미(美)준수법’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이상한 법령이었다. 내용인즉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형체를 공공시설에 배치한 것만으로 처벌받거나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사건은 어느 뮤지컬 광고에 현실적인 버전의 에릭을 붙여둔 것 때문에 시민들이 집단적인 트라우마 현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발발했다.
나를 두고 법정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오고갔다. 한 쪽은 나는 충분히 가면을 쓸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감옥에 가두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 쪽은 이유야 어찌되었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제한하도록 강제로 명령할 권리는 있지도 않다고 역설했다. 결국 판사는 그럴싸한 해법을 내놓았다. 바로 지구와 교류할 수도 아예 볼 수도 없는 달의 뒤편으로 영영 보내버린다는 계획이었다.
“달의 뒤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나는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사형 선고라도 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당신을 보내는 것이라네,” 판사가 설명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의 해방은 자유가 아니라 끝없는 죽음일 거야,’ 내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그곳에 내려놓았다. 나는 달의 뒤편에 왔다.
울퉁불퉁한 크레이터에 발을 내딛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내러 왔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떠나고 없었다. 뒤를 돌아보고 나는 사방에 우주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가 이미 떠나버렸더라도 침묵하며, 웃지도 울지도 역겨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우주가 있었다. 나는 순간 심장 속에서 무언가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다. 무엇인가가, 예수인지 우주인지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나를 부르려는 것 같았다……….
아, 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신이시여!
나는 두 팔을 벋고 광활함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는데, 저편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무엇일까, 내가 헛것을 보는 것일까? 아니다. 저것은 분명히 도시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분명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그들이 내게 말했는데?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그리로 다가갔다. 꼭 취한 것만 같았다.
이내 나는 그 불빛 사이에 휩싸여 있었다. 하늘에는 은하수와 별빛이 빛나고 온 몸은 붕 뜨는 듯 가벼웠다. 나는 내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니, 이럴 수가, 이것은 도시가 아닌가?”
정말이었다. 도시가, 그것도 내가 여태껏 봤던 것들 중 가장 아름답고도 우아한 도시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전부 웃고 있었고 그 누구도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으며, 공기 중에는 순수한 사랑만이 모락모락 자라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먼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미소짓는다. 아, 멋지고도 아름다운 얼굴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렇단 말인가? 난 실눈을 뜨고 눈을 끔뻑거렸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은 나와 꼭 닮은 생명체였다. 아, 그것은 괴물, 그 괴물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괴물, 괴물, 내 주변을 지나가던 그 모든 사람들, 그 웃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괴물들이었다. 나는 양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전부 이곳에 모여 살고 있었단 말입니까?”
“예? 아닙니다,” 나를 환영했던 신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저 푸른 행성에서 스스로를 죽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처럼 우리도 이리러 강제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자, 저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는 이곳에 우리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울고 있군요. 이리 와서 우리의 포옹을 받으십시오!”
나는 그렇게 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만난 것이 평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도 되는 듯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 때 다른 사람 한 명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나는 그 사람이 바로 몇 년 전 내가 불 꺼진 암흑의 파티 속에서 덤벼들었던 그 여자였음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당신은 왜 여기있습니까?” 난 어리둥절해져서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젖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여기에 가끔씩 나같은 사람들이 도착하기도 했어,” 그녀가 웃었다.
“맞아, 처음 눈을 뜨고 이곳이 지옥이고 저것이 망령들이구나, 하고 소리 질러댔지,” 그녀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소년이 재잘거렸는데, 그녀와 똑 닮은, 지극히 일반적인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때 이분들이 나에게 알약을 주었어. 나는 독약이구나, 그래, 이걸 먹고 죽어버리자, 생각하곤 입에 넣었어.”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그녀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저분들이 내 안에 앉아있던 괴물을 죽여주었어. 아, 난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 있는지 여태껏 몰랐어! 이제 저편으로 따라와! 우리 함께 춤을 추자!”
우리는 그렇게 했다. 별빛이 이 작은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원망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다. 단지 가슴 한 켠에 영원히 응어리질 눈물 한 덩이 만이 별빛을 받으며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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