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死中


이 글은 내가 예전에 알던 어떤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쓰였다.


물론 그 사람은 이런 글로 위로받지 못할지도 모르고, 내 조잡한 선의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이해받지 못하는 삶의 고통에 더 사로잡혀 또다시 혼자만의 구멍에 한없이 빠져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그가 이기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여러가지 감정들과 상념들에 밀려 호의에 경의를 표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만일 내가 그를 위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면 그에 대한 위로라 해도 사실은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리다. 난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생활해볼 수 있다면 이 이기심의 굴레에서 벗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만일 영겁을 지나 그 사람에게 내 언어가 닿을까 그에게 내 졸렬함을 미리 사과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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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강원도의 어느 으슥한 산골마을을 지나갈 때 우리집 차는 토요타였다.


나는 산골을 싫어한다. 만일 내가 범죄자였다면 시신을 그런 곳 어딘가에 투척해뒀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범죄자도 아니고 안전한 차 안에 타 나올 일도 없었지만, 밤의 산 옆에 혼자 남겨지는 건 상상만 해도 절망스럽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 머리의 반대편에서는 이런 광적인 공포를 자제하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넌 네가 본능에 의존해서 호객하는 풍선 인간처럼 허우적거리는 기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지 않다면 넌 마땅히 저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거기에 시신이 있든 맷돼지가 있든 간에,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해. 그게 해탈한 사람의 모습이야. 바로 그 순간, 네가 상상만 해도 절망스럽다고 말했던 그 순간에서도 태연하게 두 눈을 뜨고 네게 닥치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해. 그게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야, 넌 어리석음을 선택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다시 저 산기슭을 돌아보면 난 차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던 절망을 느끼고 움츠러들었다.


그 ‘절망’이라는 단어는 내가 나중에 와서야 갖다붙이게 된 말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기분, 뭐랄까,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육체적인 괴로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이게 유니버셜한 감정이라 단어가 따로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사실 지금으로써도 내가 생각하는 그 단어의 뜻과 보통의 그 단어의 뜻이 일치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건 내게는 절망이었다.


그러한 산골을 지나가던 날 난 다시 울적해진 내 영혼을 잊기 위해 내 가죽 속에 틀어박혀 가만히 앉아 이 기분이 날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반대편 창문 너머 사라진 사람을 찾는 벽보가 붙어있었다. 전에도 봤던 벽보였는데 오늘따라 왠지 내 골수 속을 파고 드는 것처럼 처절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빠에게 물었다.


“저건 누가 붙인 거야?”


“글쎄. 가족들이 붙인 거겠지. 저건 좀 마음이 아파.”


왠지 무슨 말이라도 다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떨어지지 않는 목청을 일부러 떨어뜨렸다.


“예전에도 봤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 아마 죽었다고 보는 게 낫겠지.”


엄마가 덧붙였다.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을 거야. 그래서 밤길 으슥한 데 조심하라는 거야. 누가 끌고가도 모르니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암흑이 더 싫어져서 다시 눈을 떴다. 어두우면 내가 정말로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리고 내 눈 앞에 엄마와 아빠가 정말로 지금도 존재하는지 장담할 수가 없다. 이론 상 암흑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내가 모르는 동안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난 저 여자가 무슨 일을 당했을지 생각해본다. 애써 모르는 척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미 그 일은 몇 년전, 혹은 십 여년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저 죽음에 내가 표할 수 있는 경의일지도 모른다. 으슥한 정류장에서 내려 별 생각없이 다음 블록으로 걸어갔을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자기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뺨에 간직한 채? 당연히 내일 아침이면 졸린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똑같은 망상에 당했을까! 그 때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의 눈에 띄었고 암흑 속에서 그는 그녀의 등 뒤에 칼을 대고 조용히 어디론가로 데려갔을 것이다.


그가 그녀를 강간했을까? 난 양손이 시려지는 것을 느꼈다. 어둡기만한 그 순간에 그녀가 그의 말에 고분고분 복종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순간에 학교도 대화도 웃음도 터무니없는 구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앞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직후에 그가 그녀를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시간을 더 끌었을 수도 있다. 나는 차라리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매 순간, 내가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세상에는 내가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진짜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라면 내가 없는 일인 양 연기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난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난 한없이 한없이 이걸 곱씹고 토해내고 되새김질하고 집어삼키고 다시 물어뜯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느껴야 할 절망은 사람 머릿수처럼 많았고 나는 새로 느끼게 된 아픔에 적응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 파묻혀 팔다리가 떨리는 걸 참아냈다. 참아내고 또 참아냈다. 왜 몸이 이렇게 떨리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씻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왜 그들이 날 읽지 못하는지, 왜 내 눈을 보아도 내가 왜 힘든지 모르는지, 왜 전에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없냐는 절박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 건지, 왜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 그런 걸로 날 다시 웃게 할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때 나는 열 살이었고, 바로 그 날 세상에 날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어른들에게 터무니없이 당연한 것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이 몸뚱아리에 갇힌 나는 혼자였다. 이 현실도 따뜻한 온기도 날 아끼는 가족들도 이 자명한 사실을 바꾸지 못했다. 끔찍한 필연이었다. 끝없이 서로 다독여줄 수 있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위안이 될텐데.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런 사람은 없다. 아마 영영 내 곁에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그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들이 원하는 애정의 깊이도 아니고 방식도 아니고 내 행동은 광기나 집착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나부터 겁에 질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끝날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이 절망의 고독함에 준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 것도 필연인 듯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죽음’이라는 잘 그려진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서 여자와 남자가 누런빛 불빛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동안 죽음은 그 옆에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함께 누워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이 그림이 이상해서 약간 무서워하기까지 했는데, 다시보면 고립된 죽음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했다. 그게 올바른 생의 자세였다. 방금 전에는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면 남의 절망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지만, 거꾸로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곱씹어봤자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고통스러워한다고 지금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고통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며, 내가 지혜와 용기를 얻겠답시고 자처하는 시험들은 어차피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날 낫게 만들어주기는 커녕 더 원초적인 감각들에 무릎꿇게 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일상적인 즐거움에 몸을 맡기고 그것에 의탁해서 죽음을 잊어야 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물론 나라고해서 매 순간 고통 속에서 살지는 않았다. 그랬더라면 아마 진작에 죽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의 뇌는 돌파구가 있는데도 그런 고통을 감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희망적이고 평범했던 순간에는 늘 주위에 사람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인 어느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자기 손으로 동맥을 찢을 수 없어.


사람은 기껏해야 혀를 깨물거나 권총을 쏴서 자살할 수는 있지만 숨을 참고 목숨을 끊을 수는 없다.


내 손으로 동맥을 찢을 수 없다, 난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난 아주 하찮은 것에 겁에 질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예컨데 창 밖을 지나가는 알지 못하는 차 소리, 자정이 지나면 내 귀에 갑작스레 울리는 이명, 하다못해 어린 시절의 특정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빨간 과자 상자도 날 침전하게 할 수 있었다. 말했다시피 이런 일들은 내가 혼자일 때 더 잘 일어났는데, 혹시 내가 한낮에 사람들과 있을 때 그 하찮은 것들을 봤더라면 그건 내 무의식 속에 때를 기다리며 잠복하다 내가 혼자일 때 도로 옛 친구처럼 날 찾아왔다.


옛 친구처럼 날 찾아왔다. 옛 친구처럼. 그렇다. 절망은 내게 아주 오래된 친구나 다름 없어 찾지 않으면 서운해지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건 내 정체성이 되었고 내 자부심이 되었다. 어떤 면으로는 난 내가 이렇게 끝없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게 없어지면 허전했고 때로는 당황하기까지 했다.


사람이 자기 손으로 동맥을 찢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난 내 손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사실 그건 유학 이후 멀찍이서 사느라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이 현실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렇게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내가 대학을 그만두었던 이유는 어떤 강박 때문이었다. 난 죽음을 무서워한 만큼 삶에 대해서도 강박적인 데가 있었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대학을 나온 다음 일을 하다가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난 또 내가 시답잖은 일상을 반복하느라 게을러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이 날 아둔하게 만들까봐 걱정됐다. 그러나 해가 아무리 지나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도로 생각해보면 중퇴라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발악처럼 느껴져 한심했다. 이 일을 한숨에 처리하려면 뇌에 약간의 교란을 줄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고 난 술을 홀짝홀짝 마셔댔다.


어이없는 삶, 어이없는 삶이었다. 아무런 대안도 자질도 없이. 난 한 잔을 했고 또 한 잔을 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인간처럼 살기 위해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난 학위증도 없고 친구도 없고 별 자긍심도 없다. 정신 차리고 나니 그런지도 몇 해가 지났다. 이 생각을 하면 또 머리를 죽이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정말로 난 괜찮다. 난 아직도 내 뇌주름들을 정신력으로 겨우 부여잡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되뇌인다. 그것만으로 난 무언가를 지킨 셈이다.




그 당시 내 눈에 비쳤던 임바차는 어떤 면으로보나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난 처음에 그녀가 인식이나 죽음이나 자유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처럼 답없는 문제를 생선처럼 뜯으며 가라앉는 것이 답에 다가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난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보다 더 관대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고, 나와 다르게 그녀가 어느 순간에 완전히 몰입해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임바차는 나에게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그녀에게- 적어도 그때까지는- 내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임바차가 내 방에 왔을 때 여태껏 그린 것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마침 처음으로 일종의 전시회를 할 기회가 생기기도 했던 터라 내 마음은 무척 떨렸다.


나는 그림에 대해 이래저래 설명하다 혹시 임바차가 싫증이 난 것은 아닌지 수시로 확인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 더 흥미로운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책무감 같은 건 다 잊어버리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한참을 그러다가 임바차의 손을 바라보고 난 잠깐 흠칫 놀랐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녀의 손 안에는 그림이, 내가 여태껏 그려왔던 그림들 어느 것보다 가장 사실적이고도 음울한 그림이 들려 있었다. 그 그림의 색깔은 주홍빛이었다. 훼손된  시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한구석에 넣어둔다고 했던 것을 어제 깜빡했던 것이다.


“그건- 내가 오래 전에 그린 거야,” 내가 말했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왠지 슬퍼지는 것을 느꼈지만 억지로 멀쩡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담담히 그 그림은 내가 수년 전 아주 옛날에 그린 것이고, 어떤 누군가가 산기슭에서 나를 지하방에 가두는 꿈을 꾸다 깨서 그린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알 수 없는 적막함을 느끼며 내가 열 살때부터 집착해왔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무엇을 그렇게 상세하게 말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래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난 그래도 두렵지 않아. 왜냐하면- 네가 내가 죽으면 그걸 알아차릴 거라고 믿으니까. 네가 내 그림들을 불에 태워주고 그중 쓸모 있는 것들은 기억해 줄거라고 믿어.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그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거운 시간만 지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때가 낀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난 이렇게 정처없이 헤메는 일이 많았다. 공기가 말할 수 없이 허전했고 겨울의 쓴 바람이 두 뺨을 스치고 옷 속까지 헤집어 놓았다. 손 마디마디가 뻣뻣해지도록 굳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날 동이 틀 무렵 배고픔도 추위도 잊고 술이나 마시던 것이 기억난다. 내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넌 지금 즐기고 있는 거야. 웃기는 놈.


내가 해명했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난 너무 많을 것을 이게 되고 말거야.


말 한 번 잘 짜맞추는 걸. 야, 말을 만들지 말아. 진리는 언어로 되어있는 게 아니야. 넌 변명하기 위해 문장을 만드는 거야.


술잔이 쪼로록 채워졌다. 심장이 뜨거워지고 목구멍이 쓰라려지는 느낌이 좋았다.


거 봐, 넌 재미로 마신다니까-.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새벽 여명이 밝았다.


이제 봄이 되었나. 어쩐지 날씨가 좋은 걸.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병원에 누워있었다. 의사는 내 폐에 병이 났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 날 밤은 영하 7도였다. 그는 나한테 입원해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자 오히려 안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편안했다. 난 중학교 언젠가부터 아픈 것을 좋아했다. 그건 내 휴식에 영원히 변명거리가 된다. 난 더이상 싸움의 주체가 아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사람들도 내게 관대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 후로는 임바차나 다른 사람들을 일부러라도 기피했다. 잠시 환각이 지나갔을 뿐 내 공황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나 부나 안락함 같은 것들은 내게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뒤따라오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역할을 했고 그뿐이었다.


방에서 하는 일 없이 누워있다보니 여느 할 일 없는 사람처럼 핸드폰을 뒤적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난 일차원적으로 사는 내 몸을 내버려뒀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화면에서 익숙한 사진을 발견했다.


그 사진은 바로 내가 열 살때 으슥한 강원도 한복판을 지나가다 봤던, 실종된 사람을 찾는 벽보였다. 나는 잠시 가만히 그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 가운데를 눌러보았다.


물증 없는 추측 기사였다. 오래전 연쇄살인의 공범이 밝혀지며 이 실종 사건도 관련된 일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어디 지하 창고에 갇혀서 변과 염화 칼슘을 먹는 가혹 행위를 당한 흔적이 있다고도 쓰여 있었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후로 항상 주머니에 네임펜 두 자루를 넣고 다녔다. 혹시나 어떤 사람이 날 지하방에 밀어넣고 문을 잠궈버릴 경우에 대한 대비였다. 그리고나서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고 난 그 속에서 햇빛도 없이 굶어죽어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내가 실제로 수척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처음에 내가 들고 다니던 것은 샤프심과 샤프였다. 그 고립된 방의 벽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함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안락한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만일 주머니에 샤프도 없다면 난 그렇게 죽었을 수도 있었을 하나의 삶을 이미 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어차피 결국 그렇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다가 새삼 만일 그들이 나를 가둔 방이 너무 눅눅하거나 벽지색이 진한 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샤프로는 아무 소용이 없으리다. 그게 내가 샤프를 네임펜으로 바꾼 계기였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는 늘 네임펜 두 자루가 담겨 있었다.




난 얼마 후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구토와 기침 때문에 입에서 피맛이 났고 숨을 들이쉴 때 호흡기가 썼다. 의사의 말따마다 입원이라는 것을 해야 했다. 의사는 나에게 이런저런 검진을 시켰고 무슨 수술법에 대해 설명했는데 정신이 몽롱한 중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따뜻한 물이나 주고 머리맡에서 책이나 읽어줬으면 했다.


어느 날 방 바깥 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무슨 말을 하나 잘 들어보고 싶었지만 몸이 자꾸만 저려서 영 아무 것에도 집중이 안 됐다. 임바차의 목소리도 들렸는데, 보아하니 날 보러온 게 아니라 병원과 뭔가 서로 물어볼 게 있어서 만난 것 같았다. 얼핏 내 상담 일정과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오고가는 것을 들었다. 의사가 나에 대한 뭔가를 제안하고 있었고 임바차는 말리고 있는 쪽인 것 같았다. 정확하게 뭘 제안했고 뭘 반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귀찮은 듯 신경질이 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뇨, 그것보다 심해요. 저 사람 정신상태가 안 좋아요. 다음부터는 못 오겠어요.”


참 자상하기도 하지. 난 돌아누워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누가 근처에 오면 꺼지라고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난 화가 나지 않았다. 이건 모두 당연한 일이다.


머리통이 조각나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서 물 같은 게 올라오는 것 같아서 난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날 끌고 가더니 세면대에서 토를 하게 했다. 검붉은 핏덩이가 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피의 색깔을 보고 자동적으로 생리학에서 배운 지식이나 떠올리고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며 난 피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교회 문 앞에 그려져 있던 양을 치는 예수 그림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내 부모 둘 중 어느 누구도 신에 연연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신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기에 십계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나는 필요했다. 초등학교 때 내 친구들 중에는 교회를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난 그들을 따라 십자가가 달린 네모난 교회에 들어갔고 나올 때는 개종되어 걸어나왔다.


내 가슴 속에 전도사의 기도가 그렇게 절절하게 묻어나왔던 게 단순히 순수한 어린아이가 화려한 미사여구에 현혹되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저녁 기도 소리를 듣는데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안에 있던 종교적인 영혼이 이제야 비를 맞고 넘쳐 몸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숭배하는 그 분, 날 나보다 더 사랑하는 창조주가 살라 명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야동을 너무 좋아했다, 사실 야한 거라면 뭐든지 다 좋아했다- 이런 내용을 굳이 다 말하고 싶지도 않다. 우스꽝스러운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당시의 내게 웃어넘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죄악으로 늘 더럽혀져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는 화장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씩 잘 차려입고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내가 여태껏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흥미로웠다. 그런 상태로 집을 나갔다. 학교는 재미없었고 짜증났다. 난 선생님들이 날 설득하려 하는 게 싫었다. 친구들과 같이 담배를 피고 노래방에 가고 이 애 저 애 집을 오가며 놀던 것은 내 선택이었다. 내가 개종했던 것이 그 기도 소리가 내 가슴과 공명했기 때문이었듯 내 일탈에 대한 환상이 그 순간 공명했다.


내 순수하던 노란 목마는 내 욕정을 부끄러워하던 때까지는 온전했지만 그 날이 되었을 때에는 다 깨져버리고 말았다. 난 하나님을 어기고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과거의 일이다. 그런 생각은 골똘히 할 마음이 없다.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이런 그림이 나타난다. 하늘빛이며 공기의 향이 꼭 내가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던 서늘한 오후를 닮았다. 난 좁은 삼거리 한복판에서 달리고 있는데 속도는 아무리해도 줄어들지 않고 한적하고 혼란스러운 와중 멈춰야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내 오른편에는 밝고 적막한 안개길이 있고 왼편에는 눅눅하고 컴컴한 흙길이 있는데, 난 처음부터 오른쪽 길로 가면 고요한 해변가가 나오고 반대편으로 가면 첩첩한 산골이 나오리라는 걸 알고 있다. 가끔은 바다 쪽으로 꺾으면 마치 이 편이 지당히 옳은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그리로 선뜻 가지 않는다. 산길은 음습하고 지긋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나는 자꾸만 그 길로 꺾어들어간다.


내가 일하던 그쪽에는 술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문진을 보았다. 그는 항상 가장 구석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그가 어딘가 돈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얼마나 마실 수 있어?"


“쓰러질 때까지?”


그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취할 때까지.”


그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서 아마 한 잔만 마셔도 취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난 그 사람이- 이것 또한 기묘한 일이었는데- 그린 그림도 본 적 있었고 쓴 글도 본 적 있었다. 난 그것들의 색채가 똑같이 칙칙한 푸른빛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언젠가 사람들이 없을 때 나는 그에게 피아노를 쳐보라고 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아주 충격적일 정도로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잘 쳤다. 기이하게도 피아노 소리마저도 칙칙한 푸른빛이었다.


“다른 색을 써보는 거 어때? 예를 들면 주황색이라든가.”


그의 그림을 보다가 내가 말했다. 그 그림은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를 그린 그림이었는데 금방이라도 천둥이 칠 것 같았다.


“해 봤어. 내가 하면 다 멍청해져.”


내가 대답했다.


“상담을 받아봐.”


그는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곳에서 집으로 오다 길이 좁은 주택가를 지나면 아주 예전부터 있었던 도살장이 나타났다. 저무녘 지나치며 나는 장제훈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색이 진한 문신들을 뜻없이 쳐다봤다.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때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난 고등학생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만일 그를 흰 방에 가두고 앞으로 10년 간의 계획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협박한다 한들 그에게 미래나 과거의 형상에 대해 진술받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바로 지금 순간밖에 없었기에 종교나 예술도 그의 머릿속에서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그는 단지 교과서적으로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잊어버렸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는 이상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타인은 그에게 자신과 접촉하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했고 따라서 그 순간에 자기를 유쾌하게 하는지 불쾌하게 하는지 만이 그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이상을 염두해두지도 않았다. 언어라는 것도 귀찮아했다. 그는 내가 쳐다보는 것을 알았지만 별 개의치 않았다.


나는 처음에 왜 내가 그토록 유심히 그를 관찰했는지 알지 못했다. 난 그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났다. 이문진은 한 시간 사이 연락을 스무 번이나 했는데 각기 거의 3분 단위로 보내져 있었다. 맨정신으로 이렇게 나온 적은 없었다. 취한 것이 틀림없었다. 난 층계참을 돌아 계속 올라갔다. 참 심신이 쇠약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신뢰 없이 그가 하는 말들을 듣다보면 듣는 사람이 도리어 겁먹을 것이다. 문을 열자 그가 손에 술잔을 든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들어와 봐. 오늘따라 밤이 이상해. 이 안은 창백한데 저 밖은... 새까매.”


그는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뒤로 물러나고 싶어졌다.


“들어와 보라니까. 봐. 나는 지금 이상한 짓을 할 거야. 놀라지 마. 난 변을 먹어볼 거야. 날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돼?”


내가 대답하지 않자 이문진이 불안해진 듯 횡설수설했다.


“내 말 들어봐. 진짜 해보려니까 마음이 흔들려. 왜 그렇게 쳐다봐? 미친 게 아니야. 사람들이 이 짓을 당했어. 잔인하지 않아? 이 세상에 법칙은 없어. 난 범죄 예방 교육에서 자는 애들을 미워했었어. 이제 이 사람들이 죽기 전에 무엇을 느꼈을지 알고 싶어. 나는 이 고통을 소화해낼거야.”


순간적으로 그를 술병같은 걸로 쳐서라도 가만히 있게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널 정신병원에 보내버릴 거야. 네가 그런 짓을 하면 정신병원에 들어가고도 남을걸.”


“난 미친 게 아니야,” 그가 절박하게 말했다. “너한테까지 강요하지는 않을게. 역겹겠지만 하나만 도와줘. 내가 주식(主食)으로 삼겠다는 건 아니잖아.”


“미친놈! 차라리 손을 지지지 그래?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지 그래?”


그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에 더 진이 빠졌다. 그는 느닷없이 아주 멍한 표정을 지으며 느릿느릿 입을 움직였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무서워…….”


그게 끝이였다. 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계속 울었다. 발작적으로 울면서도 소리를 방 밖으로 내빼지 않고 입을 물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겨울 바람처럼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왼쪽 귓가에 삐익삐익하는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빨간 과자 상자가 떨어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었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바로 그 때 난 내게 그의 고통이 병균처럼 옮겨붙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곁에서 술을 마신 시간이 길어 내 속에서도 괴물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사실 그때무렵 미쳐가고 있는 것은 나였다. 때때로 모든 일이 내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나는 충동적으로 계속 장제훈을 찾았다. 그는 내게 아직도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와 만나서 하는 것은 없었다. 난 그냥 그의 지저분한 침대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축축한 가슴 위에서 잠에 들었다. 깨어났을 때 그가 내 곁에 있던 적은 없었고 내 몸 위에 이불이라도 정성스레 걸처져 있던 적도 없었다. 난 그가 자기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했는지 어쨌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제정신이 돌아오고 나면 나는 참을 수 없게 점점 더 괴로워져갔다. 이 생활이 괴물들보다도 날 더 망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머리가 아파지면 난 또다시 그것으로 머리를 비우고 또 그것으로 머리를 비웠다.


그날에 난 유난히 아무 말도 없이 그의 새까만 동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저 인간에게 씌운 모든 환영들을 벗겨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그냥 교육받지 못했고 삶에 의욕도 철학도 없고 누구를 때려본 적은 있지만 맞아본 적은 없는 방탕함만 갖고 있는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지금 원하기만 한다면 더이상 저 인간과 얽힐 일도 없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묵묵히 내 일을 이어나가고 이문진에게 사실대로 말한 다음 나머지는 그의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면 된다. 그리고 나면 새로운 사람들과 다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치 처음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혹은 그로부터 수 년 후 더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눈 앞이 선명해지는가 싶더니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한 순간 나에게 죽음이고 대변이고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결말은 참 허탈하다. 어쩌면 그 깨달음도 내가 지어낸 환영에 불과했던 지도 모른다. 그 때 장제훈이 내 목덜미를 잡더니 술냄새를 풍기며 키스를 해댔고, 난 그냥 그가 가는대로 끌려가듯 따라갔다. 그 날밤 나는 늦게까지 잠에 들지 않고 장제훈이 코를 고며 자는 모습을 쳐다봤다. 그러나 다 쓸데없는 짓이다.




-


그로부터 이틀 후 정신과 의사가 병동을 방문했다. 나는 나중에 이문진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종합해서 대충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건... 늙은 여자예요. 못생겼고 뚱뚱하고 몸도 약해요. 다리를 절고 있어요. 피부가 짙고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끌고 가요. 그것은 날 강간하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요. 내가 갇힌 곳은 춥고 사방에 창문도 없고 습해요. 벽이 돌로 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요. 난 그 사람이라도 다시 들어와줬으면 좋겠다고요.”


전혀 다른 사람 같이 푹 쉰 목소리였다. 뒤이어 낯선 남자의 노후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똑바로 들으세요, 이문진 씨. 그런 일은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늙고 다리를 저는 여자’조차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매달리진 않아요.”


“하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그렇게 될 거예요.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예요. 그럼 그게 그거예요.”


한 순간 그는 말문이 막혀서 대답하지도 못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거의 때가 되면 어차피 죽어야 하니까 살 필요가 없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그래요?”


이렇게 물을 때 이문진의 목소리에는 아주 어린 아이가 어른에게 비는 듯한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의사가 이 기회를 타서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세요,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범죄자는 애초에 없어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덜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다들 그냥 살아갑니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기쁜 의미에 집중해가며 사는 편이 이롭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문진이 그렇게 의사에게 맹목적으로 ‘그래요?’라고 물었던 것은, 그가 왜 살 필요 없다는 소리가 틀렸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었고, 아버지처럼 현명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그를 달래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는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전처럼 웃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의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순간 그 바람은 한 번 더 깨져버렸고 그는 힘이 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추욱 늘어뜨렸다.




그의 죽음은 생각보다 앞당겨져 이루어졌고 아주 특수한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이 당시 그곳의 법률로 가능한 죽음이었는지, 대체 의학적으로 일반적인 방식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문진의 병세가 매일매일 악화되던 무렵 그의 옆 방에는 폐가 망가져있는 아이가 누워 있었다. 몇몇 사람들과 내가 이문진과 대화를 나누던 밤이 생각난다. 어쩌다가 그랬는지 어디선가에서 신장을 이식하는 것처럼 폐도 이식할 수 있냐는 물음이 튀어나왔고 누군가가 별 생각없이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문진이 헛소리하듯 중얼거리던 와중 대화는 점점 더 고인 핏물처럼 한 곳에서 소용돌이쳤고 이문진은 자기 옆 방의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며 죽어가기 보다는 자신의 제법 성한 왼쪽 허파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파편과 논쟁들은 잠깐 제쳐두자. 나는 그에게 상담사를 부를지 물어봤고, 그러자 그는 지극히 냉소적으로 어차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시도하는 척도 말라고 대꾸했다.


“잘 들어, 네가 지금 죽으면 그건 비겁한 거야.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우니까.”


그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네게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건 저 애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면서 네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해. 반대로 저 애가 널 위해 허파를 꺼내줄 수도 있어.”


그는 나로부터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오른손으로 눈만 대충 가린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난 화가 났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혼자 슬퍼하는 것밖에 없으면서 그게 무슨 지성의 결집체인 양 고수하는 저 고집이 미웠다.


“난 술이 필요해, 임바차,” 그가 말했다. 어느새 눈물도 그쳤는지 목소리에는 아무런 힘도 혼란도 없었다. “아무래도 뇌를 좀 어지럽힐 필요가 있겠어. 맨정신으로는 할 자신이 없거든……. 하지만 용기가 없는 건 아니야, 이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야. 난 신이 날 위해 이 기회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살고 싶어. 평생 한 가지를 생각해왔어. 내가 이 살덩어리를 탈피할 수 있을까, 내가 이것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을 생각했는지도 몰라. 여기서 내가 죽는 게 이기는 길일까, 사는 게 이기는 길일까. 그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는 밭은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난 저 애가 살았으면 좋겠어. 마치 아주 어렸을 때의 나를 닮았어. 아주 어렸을 때. 학교도 가기 전만큼 어렸을 때. 그게 전부야-” 그러더니 그가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는 내 손을 붙잡는데 이질적일 정도로 시리고 힘이 없었다.


“내가 말을 바꾸더라도 그 말은 듣지 마. 그건 내 욕망이 아니야. 이 껍데기의 욕망이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저 애를 위해 죽는 거야. 아니, 나한테 무슨 말도 하지마. 못 믿겠으면 네가 한 번 가서 저 애를 봐봐. 좋은 사람이야.”


난 찬찬히 말했다.


“네가 껍데기의 욕망이라고 부르는 것도 네 일부야. 자꾸 그렇게 분리해서 생각하지 마.”


“날 설득하려고 하지 마,” 그가 신음하며 말했다. “그럼 난 네 말을 들을 거야. 평생 이 순간을 후회하며 살아야 돼. 이건 내 짐이 될 거야. 난 지금 저 애를 위해 죽고 싶어. 내 소원이었다니까. 난 지하 구렁텅이에서 몸이 차갑게 식어 죽었을 수도 있었어. 살면서 또다시 그렇게 죽은 사람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없던 날 의심하고 싶지 않아. 내가 여태껏 왜 다른 사람을 위해 울었을거라고 생각해? 내가 이타적이라서? 그렇지 않아. 난 이 모든 게 내가 될까봐 운 거야. 이기적인 놈이지. 그래서 내가 그렇게 비참히 살다 죽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행복한 거야. 그만 내버려 둬.”


“그럼 하루만이라도 밖으로 나와서 햇살을 맞아봐.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 지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남을 돕다가 죽을 수 있는 길은 많아.”


그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밖으로 나와서 자연을 보라는 네 말은 듣겠지만 그래도 나는 죽을거야.”


“마음대로 해. 하지만 울면서 말하면 믿지 않을 거야.”


난 거리를 나와 한동안 폐에 공기가 차는 느낌을 느끼려 우두커니 서 있었다. 벌써 따스한 봄기운이 어색하도록 추위를 뚫고 솟아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웃고 울며,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한 쪽 블록 끝에서 나타나 반대편까지 이리저리 걸어갔다. 내 머릿속에 불현듯 산비탈에 양들의 모습이 들어찼다. 한 순간 이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늘은 그렇게 고요하고 광활하다.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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